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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듀킹 소개

코듀킹 소개 : 인생은 노빠꾸! 게임처럼 살자

by 코듀킹 2023. 8. 21.

안녕하세요. 코딩에듀킹, 코듀킹입니다. 이 글은 제가 살아왔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생을 RPG게임에서 는듯이 르고 하게 성장하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최종 목적지는 사람들이 재밌고 빠르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게임같은 시스템을 서비스화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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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면에서 열등감이 정말 심한 상태였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이유로 무시당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내 과거를 이렇게 공개하는 게 좀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누군가에겐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작성한다. 그래서 어떻게 멍청하다는 말만 듣고 살아왔던 내가 대학교에서 올 A+을 받고, 명문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으며, 28살에 회사에서 팀장 직급을 얻게 되어 세후 연봉 5500을 받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돈까지 버는지, 어떻게 공부시작 4개월만에 시리즈 B급 회사에 서류합격까지 했는지 전부 공개해보려고 한다.
 
난 수능 점수는 평균 6등급 수준이었고, 특히 언어영역은 최악이었다. 신기한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국영수 등 학교 공부를 보충하는 학원을 잠시라도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었을 때는 야간 자습활동도 필수였다. 그래서 매일 오후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독서실도 나름 자주 다녔다.
 

 
그렇게 부모님께서 적극 지원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성적은 저 모양이었다. 뭔가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나마 좀 관심 있었던 춤과 노래도 배워봤는데, 역시나 그냥 조금 배우고 흥미가 떨어졌었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점점 무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부도 안 하고, 책도 안 읽고, 특별한 취미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건 게임이었는데, 심지어 게임도 더럽게 못했었다. 
 
그 결과 나는 어떤 인간이 되었을까? 마치 운명처럼 멍청이, 찐따, 찌질이, 짜리몽땅, 찐찌버거(찐따 찌질이 버저리 거지의 합성어..), 폐급, 잘난 거 하나도 없는 놈 등의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찐따 코듀킹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무시받는 스택이 점점 쌓이다가 군대에서 터져버렸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성숙한 사람이 많았다. 내가 가장 깨부수고 싶었던 수식어는 '멍청이'었다. 진짜 멍청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말도 맨날 버벅거리고, 사회성도 떨어지는데, 상식도 없고, 공부도 못하다 보니 누가 봐도 진짜 덜떨어진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다. 내가 군대 했던 짓이 뭔지 공개해 보겠다.
 

 
마치 원숭이가 발로 쓴 듯한 글씨체여서 알아먹긴 힘들겠지만, 놀랍게도 내가 당시 군대에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 보려고 메모장에 적어놓은 메모들이다. 저런 식으로 수십 장을 메모하고, 검색을 했었다. 진짜 지금 보니까 놀랍다. 항생제, 자격지심, 회의감, 치욕, 인품, 자아성찰 이런 단어들을 검색해 볼 정도였다니.. 이 정도면 어느 정도로 멍청했었는지 설명이 끝난 것 같다. 난 이렇게 한국어 공부부터 해야 할 정도였다. 
 
군대 생활이 끝나고, 난 사람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패기롭게 토익 학원에 등록해서 방학 동안 토익만 공부했는데, 380점이 나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내 수준이었다. 그 뒤로 거의 토익 시험만 15번은 본 것 같다. 최종점수는 대학교 4학년 때 700점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대학교에서만큼은 성과를 내보자 다짐했다. 고등학 때 턱걸이로 지방대에 합격을 해서 나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중학교 수학부터 다시 시작했고, 매일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 결과 복학하고 나서 바로 학점 4.41을 기록하고, 그다음 학기에는 All A+을 기록하면서 수석, 그다음학기에도 연속으로 수석을 하게 되었다.
 

 
이후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여기서부터는 지난 5년 간의 이야기다.
 

2019년

대학교 4학년. 한국 나이로 25살이었다. 학과 내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해져 있었다.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LAB 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Schottky barrier 태양전지라는 주제로 졸업작품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결정질 태양전지의 금속-반도체 접합구조 제조방법이라는 주제로 특허출원(출원번호 : 10-2019-0175196)을 했다. 또한, 전공동아리 장으로도 활동했었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열등감이 가장 컸다 보니, 명문대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준비하던 대학원에 마침내 합격했다. 성균관대학교와 한양대학교였다. 둘 중에 난 성균관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학과의 인공지능 반도체 소자를 연구하는 연구실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3월 달에 드디어 서울로 처음 상경하게 되었다.(정확하게는 수원) 전라도 광주에만 25년을 살다가 혼자서 수원으로 올라오니 미래에 대한 생각이 점점 깊어져갔다. 결국 대학원까지 가서 진로 고민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수십 권의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실제로 한국에서 성공한 분들의 강연을 보러 가거나 직접 만나고 인터뷰를 하러 다녔다. 제일 유명하신 분은 김승호 회장님. 그리고 김경일 교수님, 박세니 선생님, 신사임당(현 주피티), 신태순 선생님, 송길영 대표님, 남궁인 의사 선생님, 지대넓얕의 작가 채사장님... 그리고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지금 '역행자'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자청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었다.
 

 
이분들의 영향을 계속 받다 보니, 결국 나는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커져버렸고, 대학원생임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사업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를 누군가에게 판매하는 '서비스 판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대학원에 합격했던 학업계획서와 과제 자료들을 해피캠퍼스에 올려서 판매하고, 네이버 블로그를 키워서 사람들에게 왕초보용 블로그 강의를 판매하고, 그 블로그 강의를 전자책으로 정리하여 크몽에 업로드하여 판매했다.
 

당시 판매했던 크몽 전자책

 
물론 난 결국 한 학기 만에 대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출까지 받아서 여기저기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남는 시간에 서비스를 판매했다. 수원 반지하에서 생활하다가 서울 고시텔로 방을 옮겼고, 부모님께 차마 이러한 상황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난 결국 생활할 수 있는 돈이 바닥나버렸다. 서비스를 판매해 봤자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밖에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자금대출과 주택청약담보대출금만 남은 채 점점 삶이 비참해지고 있었다. 
 

수원 반지하 -> 서울 고시텔

 
일을 구해야 했다. 교육, 영업, 마케팅을 모두 할 수 있는 직업을 얻고 싶었다. 결국 목표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영업과 마케팅이 가장 중요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곳은 '코리아교육그룹'이었고, 그 그룹에서 SBS컴퓨터아트아카데미, 코리아요리아트아카데미 등 여러 교육기업이 있었다. 난 그중 '코리아IT아카데미'라는 교육기업에 '교육멘토'라는 직군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영업, 마케팅, 교육을 모두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내가 원하는 직군이었고, 혼자서는 겨우겨우 100만 원을 벌었는데, 회사에 들어오니 기본급으로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급여를 준다고 하니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11월 중순에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1년

부모님께 이러한 사실을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말씀을 못 드리고 있었다. 결국 어찌어찌 들키게 되었고, 집안이 난리가 났었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자세하게 말씀드리며 겨우 설득했다. 그때를 다시 회상하면, 부모님 속을 썩인 게 너무 죄송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회사생활은 정말 적응이 되질 않았다. 나는 영업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인생을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뼛속까지 이과생이었으며, 이과생 중에서도 말을 굉장히 못 하는 편이었다. 성격도 내향적이라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마주 보며 오랜 시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게다가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해서 학원에서 상담받으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상대방 니즈도 모른 채 무작정 전화해서, 누가 봐도 신입사원인 것처럼 한동안 계속 버벅거리며 이야기했다. 당연하게도 성과는 나오질 않았고, 계속된 거절에 상처만 받고 자존감은 계속 떨어져 갔다. 그나마 잘했던 게 블로그 마케팅이었지만, 문의를 남긴 고객을 설득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와 상담을 한 고객의 대부분은 학원에 등록을 하지 않았었다.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이며,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게 중요하고, 그래서 왜 이 수업을 들어야 하고,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며, 이 학원에서 공부를 하면 뭐가 좋은 건지 등등 이런 부분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을 잘하는 멘토와 매출 차이가 거의 10배 차이가 났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었고, 대학원까지 그만 둘만큼 결단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세일즈 강의를 들으면서 멘트 하나하나를 스스로 만들어보고 연습하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조금씩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2년

2022년, 마침내 1년 평균 순 매출(환불을 포함한 매출)이 전국의 약 900명 멘토 중의 21등으로 상위 2%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비록 1등은 하지 못하여 남들이 크게 알아주진 않았지만, 꾸준한 성장이었고 최하위권으로 시작하여 이렇게 올라왔다는 게 스스로 정말 신기했다. 게다가 10월 달에는 1년 11개월 만에 드디어 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점점 날 많이 인정해 주었다. 그도 그럴게 1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금방 퇴사할 것 같은 사원이었고, 그렇게 말을 못 하는 사원이 이렇게 올라온 걸 보며 끈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팀장이 되자마자 2명을 직접 채용하여 팀을 꾸렸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2023년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죄책감이었다. 원래 성향이 사소한 거짓말에도 양심이 찔리고, 정직한 스타일이라서 내가 다른 팀장보다 못 가르쳐주는 부분에 대해서 항상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부분 외에는 다른 팀부장님에게도 많이 배우라고 말은 했으나, 조직 자체가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보니 자존심이 많이 상하긴 했었다. 
 
게다가 막상 팀장이 돼 보니 스스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안하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상태에서 주 6일에 매일 오후 7~10시에 퇴근하면서, 공부할 시간도 없이 계속 팀장을 할 순 없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2022년도부터 나와 정말 잘 맞겠다고 생각한 '그로스해커'라는 마케터 직업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데이터분석, 마케팅, 인공지능 등 여러 기술적인 스택과 마케팅적인 스킬이 필요한 직업이 정말 매력 있게 느껴졌고, 개인으로 직원들이 다 경쟁하는 형태가 아닌 다 같이 협업을 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패스트캠퍼스가 함께 진행하는 '이어드림스쿨 3기'에 합격하여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이어드림스쿨 3기에서 공부하면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3월 27일부터 시작하여 거의 5개월 정도(21주, 147일)가 지났다. 그동안 나는 코딩테스트 스터디장이 되어 3개월째 운영하며 214개의 문제를 풀이했고, 63개의 공부한 글을 블로그에 작성했고, 81개의 회고 글을 작성했고, 8권의 책을 읽었으며, 43회 운동을 했고, 자기 전 26일 동안 영어 회화 공부를 했으며, 4번 크몽 데이터분석 시각화 서비스를 판매하고, 2번의 팀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한, 오프라인 강의와 패스트캠퍼스 온라인 강의를 통해서 컴퓨터공학, git/github, 파이썬, 머신러닝, 통계, SQL, GA4, 태블로, AARRR 프레임워크, 구글 스프레드시트, 엑셀, SEO를 배웠다. 시리즈 B급 회사에 서류합격도 된 상태다. TMI지만, 지금 내 노션에는 1만 페이지가 넘는 양의 메모가 들어가 있을 것 같다.
 

147일 만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할 수 있었을까? 아직 이어드림스쿨 3기를 수료할 때까지 4개월 하고 2주 정도가 더 남은 상태이기 때문에 취업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모든 비법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열등감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성장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성장하는 걸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RPG게임에서 경험치 바가 채워지는 것처럼 정량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데이터화 시켜서 실시간으로 시각화 된 그래프를 보여주는 시스템을 조금씩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바는 인생을 게임처럼 즐기면서 꾸준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서비스화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던건 3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어디서부터 시작 해야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계속 미뤄오다가 기술 공부를 시작하고나서 조금씩 방향성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보고, 효과가 좋으면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시스템을 완성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분명 저처럼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으신 분들이 정말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코듀킹, 상위 1%에 집착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쓴 글을 마치겠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신 점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life_researcher@naver.com으로 메일 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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